브리즈번 남부의 위샤트(Wishart)는 개인적인 일로 자주 찾는 동네다. 이곳에 올 때면 자연스레 인근 명소인 마운트 그라밧 전망대(Mount Gravatt Lookout)도 종종 둘러보게 된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브리즈번 시내가 발 아래 펼쳐진다. 경치가 좋아서일까, 카페에 앉아 마시는 커피의 진한 향은 유난히 온몸에 깊숙이 스며든다. 이곳에는 산책로도 잘 조성되어 있다. 얼마 전에는 산책로에서 호주를 대표하는 야생 코알라를 만나기도 했다. 마음의 휴식처로 손색이 없는 장소다.
오늘도 위샤트에 갈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자주 들렀던 전망대가 아닌 다른 장소를 찾아보았다. 산책로가 있는 공원을 검색하니, 인공지능은 언더우드 공원(Underwood Park)을 추천한다. 가까운 곳이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10여 분 운전하니 작은 호수가 보인다. 공원에 도착한 것이다.
주차장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공원 규모가 크다. 산책로를 따라 발걸음을 내디딘다. 조금 걸으니 특이한 조형물이 눈에 띈다. 분홍색을 띤 큼지막한 돌을 중심으로 미로를 만들어 놓았다. 나중에 알아보니 중앙에 있는 돌은 장미 수정(Rose Quartz)이라고 한다.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걷기 명상’을 하는 장소다. 주위를 둘러싼 대나무 숲과 잘 어울린다. 도시 생활에 지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다.
산책로를 따라 계속 걸으니 제법 큰 주차장이 나온다. 어린이 놀이터가 있는 장소다. 아이들이 붐비는 공원을 찾아다니는 이동식 아이스크림 자동차도 보인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함께 나온 가족들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전형적인 호주의 주말 풍경이다.
공원에는 스포츠 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다. 호주 여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네트볼(Netball) 경기장이 넓은 대지에 조성되어 있다. 제법 규모가 큰 관람석을 갖춘 축구장도 보인다. 축구장 가까운 곳에는 산악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트랙도 있다. 경기가 없어 비어 있는 축구장과 달리, 이곳에서는 청소년들이 자전거를 즐기고 있다. 호주에 살면서 종종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호주 사람들은 스포츠를 무척 즐긴다는 점이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 작은 호수에 도착했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의자에 앉아 잠시 주위를 살핀다. 오리 떼가 연꽃 사이를 유유히 배회한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자라 한 마리가 바위에 앉아 있다. 따뜻한 햇볕을 쬐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귀엽게 보인다. 호수 근처에서는 사람을 전혀 개의치 않는 물도마뱀(Water Dragon)도 많이 보인다.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과 야생 동물, 그리고 수많은 꽃과 나무들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인간의 욕심을 보여주는 전쟁으로 시끌벅적한 세상이다. 그래서일까, 평화롭게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모습이 가슴을 파고든다.
호수 끝자락까지 걸으니 예상하지 못한 동양식 건물이 숲 건너편에 보인다. 호기심에 찾아가 보니 규모가 큰 절이다. 뜻밖이다. 호주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절은 보기 어렵다. 오래전 울릉공(Wollongong)이라는 도시에서 대만 사람이 세운 큰 절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 이후 이러한 규모의 절은 처음 본다.
입구부터 예사롭지 않은 절이다. 불광산중천사(佛光山中天寺)라는 큼지막한 이름이 적힌 대문이 버티고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석상과 꽃들이 어우러진 정원이 보인다.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허름한 보따리 하나를 작대기에 걸쳐 들고 방랑하는 달마대사의 석상이다. 역마살이 끼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나로서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다.
어느 과학자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우리는 별에서 떨어져 나와 지구라는 행성을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행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장소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많은 사람이 여행에 빠지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절 안을 둘러본다. 대만에 있는 불교 단체에서 1992년 건립했다고 한다. 안내판을 보니 다도(茶道) 체험, 명상 수업, 서예 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미술관과 박물관도 둘러보았다. 서예를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 보아도 보통 필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한국 사람으로서 많이 접했던 동양화들도 눈에 띈다. 먹을 흠뻑 머금은 붓으로 그려낸 산수화를 앞에 두고 잠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동양화 특유의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집에 돌아와 오늘 둘러본 절에 대해 알아보았다. 대만의 불교 단체인 ‘불광산사’의 호주 지부라고 한다. 불교를 깊은 산속의 종교가 아닌, 대중의 일상과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불교를 지향한다고 한다. 특히 불광산사는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열려 있다는 말이 마음에 든다.
호주 사람들에게 종교를 물으면 기독교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인구 조사를 보면 44퍼센트가 기독교인이라지만, 교회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호주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나누는 삶이 생활화되었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된다. 홍수나 산불 등 자연피해가 있으면 자기 일처럼 돌보는 사람이 넘쳐난다. 자원봉사는 생활화되어 있다. 대중의 일상과 삶 속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기독교인들이다.
우리 집에는 선물로 받은 작은 부처상이 있다. 부처상 목에 작은 십자가를 걸어 놓았다. 호주 오지에서 원주민과 지낼 때 독일 신부가 직접 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다. 십자가 옆에는 아주 오래전 한국에서 원불교 교무님에게 선물 받은 묵주도 함께 놓았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을 생각한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멸시하고 목숨까지 빼앗는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 종교가 다름에도 서로 사랑하며 지내는 모습을 원하지 않으실까. 나의 종교가 최고라는, 나의 종교만 옳다는 아집에서 한 걸음만 물러서도 이 세상은 한결 평화로울 것이다. 종교의 벽을 넘어 서로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며 바랐던 ‘보시기에 좋았던’ 원래의 모습이 아닐까.




글·사진 : 이강진 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