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아들이 시드니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그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기회가 생겼다. 아침 5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 잠깐의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 같은 일을 반복하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많은 사람들이 왜 그토록 FIRE(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를 꿈꾸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FIRE는 재정적 독립을 이루어 젊은 나이에 은퇴하는 삶을 말한다. 소비를 줄이고 적극적으로 저축하고 투자하여 경제적 자유를 얻고, 이후에는 투자 수익 등을 통해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계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과연 FIRE족은 행복할까?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젊은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얻는 것이 곧 행복을 의미할까? 행복에 관한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경제적 안정은 분명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이다. 돈이 부족해서 생기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고, 원하지 않는 일을 거절할 수 있는 선택권도 커진다. 그러나 경제적 자유만으로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안정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돈이 많아지는 것과 행복이 언제나 같은 비율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가진 것을 잃을까 하는 불안과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욕심이 오히려 행복을 빼앗기도 한다.
결국 FIRE의 핵심은 돈보다 자유에 있다. 돈 자체를 인생의 목적으로 삼을 때보다 돈을 통해 얻는 시간의 자유와 삶의 선택권을 소중히 여길 때 만족도는 더 높아질 수 있다.
경제적 자유를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행복은 거창한 데 있지 않다. 아침에 학교에 가는 아이가 깨웠을 때 “조금만 더 잘게”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 가족이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시간, 하기 싫은 일을 생계 때문에 억지로 계속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권 같은 것이다. 그들에게 경제적 자유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내 시간을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에 더 가깝다.
그러나 자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은퇴 후에도 자신이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한다. 목적 없이 일을 그만두면 오히려 자신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잃을 수도 있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고,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는 만족감 역시 일을 통해 얻는다.
상담실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종종 만난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충분한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깊은 공허함을 호소하는 사람 역시 있다. 결국 사람을 지탱하는 것은 통장의 숫자만이 아니라 ‘내 삶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인간관계이다. 직장을 떠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만날 기회도 줄어들 수 있다. 함께 웃고, 이야기를 나누고, 어려울 때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다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풍요로워도 삶은 쉽게 외로워질 수 있다. 행복한 사람들의 삶에는 대부분 좋은 관계가 자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조심해야 할 것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지나치게 희생하는 것이다.
물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절제와 희생은 필요하다. 오늘 조금 아끼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그러나 현재의 기쁨과 감사,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건강과 인간관계까지 모두 미래로 미뤄 둘 수는 없다.
“조금만 더 모으면 행복할 거야.”
“은퇴하고 나면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지.”
“경제적으로 자유로워지면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그렇게 행복을 계속 미래로 미루다 보면 어느 날 돈은 준비되어 있는데 함께 누릴 사람이 없거나, 건강이 따라주지 않거나, 정작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조기 은퇴만을 목표로 오늘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삶 속에서도 작은 자유를 누리고, 은퇴 이후에도 의미 있게 할 일을 준비하며, 좋은 인간관계를 가꾸고, 자신의 형편에 맞게 꾸준히 미래를 준비하는 삶이 오히려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지혜이다. 그러나 미래를 위해 오늘을 잃어버리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돈은 우리에게 자유를 줄 수는 있지만, 행복을 대신 살아 주지는 못한다.
진정한 부자는 가장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오늘도 감사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삶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글 : 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