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없애는 사랑보다, 고통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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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고통을 경험한다. 그래서 고통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생의 한 부분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하면 고통을 완전히 피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마주하고 이겨내며 성장의 도구로 삼을 수 있을까”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는 자녀만큼은 고통 없이 살기를 바란다. 전쟁과 가난, 결핍과 수고를 몸소 겪은 세대일수록 그 마음은 더욱 크다. “내 아이에게 만큼은 이런 아픔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자녀에게 더 편한 길, 더 안전한 길, 더 많은 것을 주고 싶어 한다. 어떤 부모는 결혼하면 평생 설거지를 해야 하니 결혼 전에는 힘든 집안일을 안 시키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또 어떤 부모는 적어도 자녀에게 집 한 채는 남겨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아껴가며 살아간다.

얼마 전 아내가 한 주 동안 집을 비워야 해서 내가 혼자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그런데 암 투병 중이시고 몸도 많이 편찮으신 어머니께서 당신의 몸 상태는 뒤로한 채 선뜻 우리 집에 오셔서 아이들을 돌 봐주겠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 졌다. 약간의 어려움을 겪게 될 아들을 위해 자신의 아픔을 감수하면서까지 움직이려는 어머니의 희생, 그 조건 없는 사랑이 가슴 깊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자녀가 고생 없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참으로 깊고 아름답다.

하지만 부모가 아무리 자녀의 고통을 대신 막아주고 싶어도, 자녀가 인생의 모든 고통을 피해 갈 수는 없다. 인생에는 예기치 않은 사고가 있고, 질병이 있고, 상처와 상실이 있다. 신앙이 있다고 해서, 혹은 착하게 산다고 해서 그런 고통을 모두 비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고통의 유무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해석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성장하느냐 이다.

긍정심리학자 Martin Seligman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매우 힘든 사건들에 주목했다. 고문, 심각한 질병, 자녀의 죽음, 강간, 수감처럼 삶을 뒤흔드는 경험들을 연구한 결과, 극심한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 가운데 오히려 더 깊은 삶의 의미와 더 강한 내면의 성숙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것이 고통 자체가 좋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인간은 고통을 통해 무너지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더 단단해 지고 더 깊어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큰 고통을 겪을 때 사람은 심한 감정적 혼란을 경험한다. 자신에 대한 믿음, 타인에 대한 신뢰, 미래에 대한 기대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불안과 짜증, 우울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 안에는 그런 고통을 견뎌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 시간이 흐른 뒤 삶의 균형을 조금씩 회복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능력, 그것을 우리는 ‘회복탄력성’이라고 부른다.

상담 현장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똑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어떤 사람은 그 일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더 성숙해진다. 반면 어떤 사람은 오랫동안 그 상처에 붙잡혀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회복탄력성이다.

전쟁에 참여했던 군인들 가운데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군인들에게 회복탄력성 훈련을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줄이고자 노력해 왔다고 한다. 그 핵심은 재앙적으로 해석하는 사고방식을 바로잡고, 감사하는 습관을 기르며, 자신의 강점을 발견하고, 건강한 관계와 의사소통 방식을 배우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부모가 자녀에게 남겨주어야 할 가장 큰 유산은 과연 무엇일까? 더 많은 재산일까? 더 편안한 환경일까? 물론 그것들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녀가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려움이 왔을 때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어떻게 감정을 다루어야 하는지, 어떻게 감사와 희망을 붙들어야 하는지, 어떻게 관계 안에서 진실하고 건강하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오래 남는 유산이다.

어쩌면 이것은 영적 훈련과도 깊이 연결된다. 세상의 두려움과 왜곡된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을 바로 세우는 것, 매일의 삶 속에서 감사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강점을 찾아 사용하는 것, 그리고 가정 안에서 사랑으로 진실을 말하는 법을 배우는 것. 이런 훈련은 우리를 단지 고통을 견디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고통 속에서도 성장하는 사람으로 빚어 간다.

고통은 누구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다. 고통을 두려워만 하며 피하려 할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이겨내는 훈련을 통해 더 깊고 강한 사람으로 자라날 것인가?

피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그 시간을 통해 더 지혜롭고 더 단단해 지는 사람들. 그래서 결국 고통 마저도 성장의 자산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와 가정 안에 더 많아 지기를 소망한다.

글 : 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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