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k Warren의 아들이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신앙이 깊은 사람에게도, 성공한 사람에게도 우울과 죽음의 그림자는 예외 없이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우리는 흔히 고통 없는 삶을 꿈꾼다. 특히 부모 세대는 자녀에게 만큼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물려주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삶에서 고통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통은 때로 사람을 성장시키는 도구가 되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면 사람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극심한 고통과 반복되는 좌절 속에 놓인 사람은 마치 늪에 빠진 것처럼 느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고, 점점 더 깊이 가라앉는 듯한 절망감에 사로잡힌다. 그 순간, 죽음은 문제를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관계의 고통에 지쳐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자살 대신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는 자해를 통해 내면의 고통을 견디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 없고, 때로는 더 큰 위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들도 기쁨을 느끼고, 행복을 경험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깊은 우울과 절망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 마치 영혼의 등불이 꺼진 것처럼 모든 소망이 사라진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의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다. 판단하지 않고, 조언을 강요하지 않으며, 그저 곁에 머물러 주는 사람이다.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진심으로 이해하려 한다는 경험은, 그 자체로 생명을 붙드는 힘이 된다. “당신은 가치 없는 사람이 아니다”, “당신의 삶에는 여전히 의미가 있다”는 메시지가 마음 깊은 곳에 닿을 때, 죽음을 향하던 시선은 다시 삶을 향할 수 있다.
필자 역시 관계의 고통 속에서 죽음을 떠올린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을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던 이유는 삶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결국 다시 살아야 한다는 내면의 결단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고통은 지나갔지만, 만약 그 고통이 더 깊고 오래 지속되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주변 어딘가에는 눈물과 외로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자주 눈물을 보이며, 반복적으로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신호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따뜻한 한마디, 진심 어린 경청은 단순한 위로를 넘어 한 사람의 생명을 죽음에서 삶으로 돌이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물론 모든 상황을 개인의 노력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다. 만약 고통이 장기간 지속되거나, 구체적인 자살 계획을 언급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반드시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때는 혼자서 책임지려 하기보다 가족과 전문가의 도움을 함께 연결하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고통 가운데 있는 공동체를 위해 사람을 보내 위로하고 격려하게 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행위를 넘어, 인간이 서로에게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임을 보여준다.
우리가 누군가의 삶에 단 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그 한 사람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어쩌면 그 한 사람의 관심과 경청이, 누군가를 죽음이 아닌 삶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이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주변을 한 번 더 돌아보자. 그리고 누군가에게 조용히 말을 건네보자.
“괜찮으세요? 제가 옆에 있어도 될까요?”
글 : 호주카리스대학 김훈 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