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 창세기 2:15
2036년 8월 8일 금요일, 아침 6시 38분.
평소보다 38분 늦게 눈을 떴다. 밤새 호흡과 심박수, 혈당, 수면과 감정 변화를 살핀 개인 AI ‘자비스’가 알람을 늦춰 놓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영화 속 AI 비서에게서 따온 이름이라 아이들은 촌스럽다고 놀렸다.
자동 커튼이 열리고 햇살이 들어오자 자비스가 부드럽게 말했다. “지난 사흘 동안 회복에 필요한 수면이 부족했습니다. 오늘 일정을 재조정했고 첫 회의는 온라인 참석으로 변경했습니다.”
고맙다고 말하려다 멈췄다. 내가 정하지 않은 일이 이미 결정돼 있었다. 그래도 몸은 가벼웠고 판단은 옳아 보였다.
식탁에 앉자 벽면 화면에 오늘의 묵상 말씀이 나타났다. 최근 교회 문제로 낙심하고 동료와의 대화를 되새긴 것을 자비스는 알고 있었다. 그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구절과 3분 묵상, 찬양, 기도문을 준비했다. 놀랍게도 내 말투와 오래된 기도 제목까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읽으려던 손을 멈추었다. 오늘 내게 필요한 말씀을 AI가 골라 준 것일까? 아니면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씀만 계속 골라 주도록 내가 AI를 훈련한 것일까?
위로가 필요한 날도 있지만, 때로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불편하게 하고 회개하게 한다. 나는 화면을 끄고 책장에서 성경을 꺼냈다. 창세기 2장을 읽다가 한 구절 앞에서 멈췄다.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첫 온라인 회의를 마친 뒤 자율주행 차량에 올랐다. 출근길에 자비스는 밤사이 도착한 메시지를 요약하고 답장 초안을 만들었다. 회의 자료도 완성되어 있었다. 실시간 번역 덕분에 서울, 골드코스트, 마드리드, 런던의 동료들과 각자의 언어로 불편 없이 대화했다. 십 년 전 몇 시간 걸리던 일을 몇 분 만에 마쳤다. AI는 지식과 경험을 연결했고, 장애가 있는 동료에게는 눈과 귀와 손이 되어 주었다. 기술은 분명 하나님의 일반은총 안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놀라운 가능성처럼 보였다.
오전 회의가 끝나자 자비스는 한 직원을 다른 부서로 옮길 것을 권했다. 그의 최근 성과와 근무 패턴, 말투의 변화, 팀원들의 반응을 분석한 결과였다.
“그를 현재 업무에서 제외하면 팀 생산성이 11.4퍼센트 향상됩니다. 갈등 가능성도 크게 낮아집니다.”
논리적으로는 완벽했다. 그러나 어제 그가 복도에서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내가 수술을 앞두고 있어 밤마다 병원을 오간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정까지 입력돼도 자비스는 또 하나의 변수로 계산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위해 얼마나 손해를 감수할지는 내가 책임질 선택이었다.
나는 그의 자리로 가서 커피를 건넸다. 한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들었고, 팀원들과 업무를 나누어 그가 몇 주간 일찍 퇴근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자비스는 조용히 경고했다.
“이 결정은 단기 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나는 대답했다.
“알고 있어. 하지만 사람은 성과표보다 크니까.”
점심에는 십 년 만에 친구와 홀로그램으로 마주 앉았다. AI는 그의 표정과 목소리를 분석해 “우울 가능성 78퍼센트, 자해 위험 낮음”이라는 문구를 내 시야 한쪽에 띄웠다. 이어서 사용할 만한 위로의 문장도 제시했다.
하지만 나는 추천 문장을 지웠다. 친구가 말을 멈췄을 때 빈틈을 메우지 않고 함께 침묵했다. 한참 뒤 그가 울기 시작했다. AI는 눈물의 원인을 분석할 수 있었지만, 그 세월을 친구와 함께 살아낸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네가 혼자가 아니야. 이번 주말에 내가 직접 갈게.”
저녁에는 교회 소그룹 모임이 있었다. AI는 지난주 설교를 참석자별로 요약했고, 각 사람의 질문에 맞는 성경 구절을 추천했다. 새로 온 이민자는 자동 통역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처음으로 나눌 수 있었다. 청력이 약한 노인은 실시간 자막 덕분에 모든 대화를 놓치지 않았다.
AI를 거부하는 것이 믿음이라 여겼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제대로 사용된 기술은 고립의 벽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가는 다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모임이 끝날 무렵 한 청년이 물었다.
“목사님, AI가 제 기도도 작성하고 성경도 설명해 주는데 꼭 교회에 와야 하나요? AI 상담자는 저를 판단하지도 않고 언제나 제 말을 들어 주거든요.”
잠시 답을 찾지 못했다. AI는 성경의 모든 번역본과 주석을 기억하고, 내가 오랜 시간 준비한 설교보다 더 매끄러운 메시지를 몇 초 만에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정답을 공급받는 장소만이 아니다. 서로의 불편함을 견디고, 용서하고, 함께 식사하고, 아픈 이의 손을 잡으며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가는 공동체다. AI는 사랑에 관한 수많은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랑의 책임을 질 수는 없다. 나는 청년에게 말했다.
“AI에게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요. 하지만 신앙은 정보를 얻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하고 책임지는 삶이에요. 우리는 서로에게 때로 짐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짐을 지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밤 11시 12분, 침대에 눕자 자비스가 하루의 보고서를 읽었다.
수면 준비도 86점, 업무 효율 81점, 정서 안정 74점, 신앙 활동 목표 92퍼센트.
이어서 물었다.
“오늘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인 하루였습니다. 만족하십니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오늘 내가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이었지?”
“객관적 성과를 기준으로 하면 오전 회의의 계약 조정입니다.”
“그럼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은?”
“직장 동료와의 57분간 대화, 그리고 친구와의 주말 방문 약속입니다.”
나는 웃으며 자비스를 수면 모드로 전환했다. 방 안이 조용해지자 하나님께 기도했다.
“주님, 오늘 저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편리함을 주님으로 착각하지 않게 하소서. 계산할 수 있는 것만 가치 있다고 여기지 않게 하시고, 추천받은 답을 따르기 전에 주님의 뜻을 묻게 하소서. 제가 만든 도구에 제 양심과 책임을 넘기지 않게 하시고, 이 기술로 사람을 살리고 돌보며 창조세계를 경작하고 지키게 하소서.”
십 년 후 AI는 우리의 몸을 돌보고, 일정을 관리하고, 성경을 설명하고, 설교와 기도를 돕고, 중요한 결정을 추천할 것이다. 우리는 AI를 거부하며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것을 무조건 신뢰하며 미래를 맡길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문화명령은 창조세계를 마음대로 소비하라는 허가가 아니라 경작하고 지키라는 책임이었다. AI 시대의 크리스천에게도 같은 책임이 주어진다. 기술을 두려워하거나 숭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아래 분별하며 사용하고 그 결과에 책임지는 것이다.
AI는 무엇이 더 빠르고 유리한지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 선한지,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지, 어떤 손해를 기꺼이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우리는 믿음과 순종으로 대답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더 똑똑한 기술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기술 위에 계신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며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AI는 우리의 하루를 관리할 수 있지만 우리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글 : 김도윤
골드코스트 이민가족교회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