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이사야 11장 6절 ~ 9절
최근 인공지능(AI)과 ChatGPT의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목회 현장에서도 큰 유익이 있어 이를 배우고 활용하고 있지만, 기술 변화가 너무 빠르게 진행되기에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문맹처럼 뒤처질 수 있다는 영적·지적 긴장감을 느끼게 됩니다.
앞으로 20~30년 후 우리 자녀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인간의 육체노동이 거의 필요 없는 사회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일부는 AI가 만들어낼 생산력으로 노동 없이도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미래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술 발전이 곧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도 기술이 발전한 시기마다 전쟁과 갈등은 더 심화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직전에도 기계 문명이 꽃피었지만, 인류는 그 기술로 참혹한 살상을 저질렀습니다. 오늘날 국제 정세 역시 이익 추구, 이념 극단화, 민족주의 갈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며, 인간이 도덕적·영적으로 성숙하기란 여전히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바라본 새 세상의 환상 (이사야 11장)
이사야 11장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참된 ‘새로운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보여줍니다. 6절 이하에는 인간 역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완전한 평화의 환상이 선포됩니다. 이리와 어린 양, 표범과 염소, 송아지와 사자가 함께 지내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이끌며, 독사와 아이가 함께 있어도 해침이 없는 세상 – 그 이유는 “물이 바다를 채우듯 주님을 아는 지식이 온 땅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잔혹한 앗수르 제국이 북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주전 8세기, 약육강식의 공포가 온 땅을 지배하던 절망의 시대에 선포되었습니다. 므나헴 왕은 막대한 조공을 바쳤지만 결국 사마리아는 멸망했고 백성들은 끌려갔습니다. 바로 그 암흑기에 이사야는 강대국의 폭력과 인간의 탐욕이 끝나는, 원수들이 화해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산의 비전을 선포한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과 끊어진 다리를 잇는 화해의 사역
호주는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나라지만, 그 역사에는 원주민들의 깊은 상처가 배어 있습니다. 18세기 영국은 호주를 식민 통치하며 이 땅을 ‘테라 눌리우스’, 즉 주인 없는 땅으로 규정했습니다. 수만 년 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은 채 정복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원주민 공동체의 증언에 따르면, 과거 정부의 공식 기록에는 원주민의 생년월일이나 인격적 정보 대신 ‘종자(Breed)’라는 항목이 적혀 있었고, 혈통에 따라 ‘하프 카스트’ 등 비인간적인 분류가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큰 비극은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도둑맞은 세대(Stolen Generations)’입니다. 정부와 교회의 에이전트들은 원주민 아이들을 부모에게서 강제로 빼앗아 격리시키고, 언어와 문화를 금지한 채 백인 가정에 하인이나 노동력으로 분양했습니다. 신문에는 “일 잘하고 건강한 아이를 데려갈 가정을 찾는다”는 광고까지 실렸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 채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도 자녀를 어떻게 사랑하고 양육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세대 간 트라우마가 발생했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가정 해체, 폭력, 약물 남용, 높은 자살률 등 심각한 상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땅을 빼앗긴 것보다 더 큰 비극은 부모와 자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적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복음과 끊어진 다리를 잇는 화해의 사역
이처럼 역사 속에서 깊게 드리워진 상처와 단절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뿐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려던 사람들의 손에서 돌을 내려놓게 하셨고, 민족의 반역자로 취급받던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 그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를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적대의 담을 완전히 허물었다고 선포했습니다.
한국 교회사에서도 이러한 화해의 역사는 반복됩니다. 양반 출신 조덕삼 장로는 자신의 마부였던 이자익을 먼저 목사로 세우고, 교회의 담임목사로 존중하며 섬김으로써 신분제의 벽을 무너뜨리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천국은 나에게 편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즐거워하는 곳이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원수 같은 이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서로를 끌어안고 용서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우리 한인교민들과 자녀들이 단순히 세상에서 성공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갈등과 반목으로 찢겨진 시대 속에서 끊어진 다리를 잇는 화해자(Peacemaker)로 자라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글 : 윤명훈
골드코스트 비전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