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계시록 21장 1절 ~ 5절
대부분의 장로교단은 [장로교 12신조]를 굳건히 따르고 있습니다. 제1조인 성경의 무오한 권위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성품, 삼위일체, 천지창조, 인간 창조, 타락, 그리고 죄의 무게(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값으로 치러진 대속)를 다룹니다. 이어 성령의 사역과 은혜의 수단인 성례(세례와 성찬), 그리고 마지막 제12조에서는 인류 역사의 최종 종착지인 ‘죽음 이후의 부활과 그리스도의 재림 및 최후 심판’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죽으면 끝”이라 말하지만,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부활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 선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인간이 살아온 삶의 모든 자취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최후 심판대 앞에서 엄중한 판단을 받게 됨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엄중한 심판 경고와 재림의 긴장감
예수님의 복음서 사역을 살펴보면, 주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에 대해 끊임없이 경고하셨습니다.
● 세례 요한은 회개 없는 나무는 찍혀 불에 던져진다고 했고, 예수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 산상수훈에서 “주여 주여”만으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 심판 날에는 사람이 무심코 내뱉은 말까지 해명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베들레헴 마리아의 품에 아기로 오셨던 예수님의 초림(First Coming)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구원자의 모습이었지만, 다시 오실 예수님의 재림(Second Coming)은 공의로 세상을 가려내시는 심판자의 모습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믿고 복종한 자들은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나, 불순종한 자들은 응당한 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심판의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마음에 거룩한 긴장감과 영적 각성을 불러일으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의 반전: 심판의 공포가 아닌 연인의 감격적인 재회
그러나 성경이 묘사하는 주님과의 마지막 만남이 오직 두려움과 공포의 심판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이하에 기록된 사도 요한의 환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감격적인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여기서 묘사된 장면은 심판대 앞에서 지옥에 갈까 천국에 갈까 부들부들 떨며 순서를 기다리는 죄수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떨어져 그리워하던 신랑과 신부가 드디어 마주 안기는 사랑의 재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눈물을 일일이 닦아주시고 모든 상처를 위로하시며 새 창조를 선포하십니다.
믿음을 넘어선 ‘사랑’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의 영광
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 심사대를 떠올려 보십시오. 여권과 비자를 일일이 대조하고 얼굴을 확인받느라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일반 통로가 있는 반면, 사전 등록된 신뢰를 바탕으로 거침없이 통과하는 특별한 통로가 있습니다. 심판대 앞에서 주님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내가 믿었는가 안 믿었는가, 신앙생활을 형식적으로 잘했는가”를 따지며 두려움으로 통과하는 수준이 아니라, 주님을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했던’ 자들은 신랑의 품에 안기듯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계명을 지키는 것은 억지 의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랑의 증거입니다.
복음성가 가사처럼 성도는 주님을 만나는 그날, “나의 주를 나의 주를 내가 그의 곁에 서서 뵈오며 손의 못 자국을 보아 알겠네”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찢기신 손의 못 자국으로 우리를 안아주실 것이며, 성도는 이 땅에서 주님의 계명(“서로 사랑하라”)을 지켜내느라 찢기고 다치고 상처 입은 흔적을 가지고 주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성질 때문에 흘린 눈물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이웃을 사랑하느라 흘렸던 눈물만이 주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닦아주실 사랑의 눈물과 상처의 흔적을 간직한 채, 다시 오실 신랑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과 감격으로 맞이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글 : 윤명훈
골드코스트 비전장로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