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바른 신앙을 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일입니다. 특히 자신이 건강한 영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 곧 진정한 영적 삶은 우리가 거듭났다는 사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의 삶이 중생에서 시작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영적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천국에 가는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말합니다. 그것은 외적인 것에 있지 않고 내적인 것에 있습니다. 적극적인 내적 실재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는 결국 외부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속이 차면 밖으로 나오게 마련입니다.
스코틀랜드 태생의 신학자인 존 매쿼리(John Macquarie)는 인간을 ‘하나님의 영을 분배 받은 영적인 존재’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래서 인간이란 성령의 역사에 동참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고 소개했고, 인간의 역동적인 특성을 언급하면서 ‘자기를 초월하여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존재’ 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고, 우리를 육적으로 대하시거나 만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영적으로 라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을 향해 살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영적인 존재로서 바른 신앙을 회복하고 건강한 영성을 지켜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유물론 사상은 교회까지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불행하게도 교회가 종종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지나칠 정도로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고, 신앙인이지만 빈번하게 무신론자들과 다르지 않게 사업을 하고 직장 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고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서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믿음은 소홀히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을 점유하고 있는 유물론적인 사상이 모든 방면에서 영향을 미치고, 그리스도인의 생활 속에까지 파고 들어와 그 삶을 세속화시켜 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하나님의 실존을 의심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마치 자연신론자들과 같이 하나님을 자신의 삶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단지 우주의 창조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교회에 출석하지도 않으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깁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의무가 예배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도 무엇을 잊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다 보면 결국엔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이름 뿐인 그리스도인으로 크게 나누어지게 될 것입니다. 유럽의 많은 사람들도 교회에는 나가지 않으면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합니다. ‘종교란’에는 기독교라고 쓸 것입니다. 어느 교회의 교인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고, 소속된 교회는 없으며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필요할 때만 찾습니다. 문제는 그럴 때 신앙과 영성에 대한 방향이 전혀 기독교적이 아닌 다른 영성으로 흐를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영적이어야 할 교회가 바른 신앙과 건강한 영성 훈련에 치중하기 보다는 오히려 선교회나 공동체 같은 ‘준 교회’(Para Church)에서 외롭게 외쳐온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도적 교회는 그동안 외적인 성장을 했지만 율법적인 신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강조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에 잘 순종할 것인가에 더 관심을 가져온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신앙과 영성은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성의 문제입니다. 바른 신앙과 건강한 영성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삶의 온전한 방식이 될 때 바른 신앙과 건강한 영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럴 때 바른 신앙인으로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영혼의 기쁨과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글 : 골드코스트 디사이플교회
담임목사 장원순 0433 308 4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