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義人)의 자손

한때 기독교계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는 책에 대한 논란이 많았습니다. 이 책은 부모나 조상이 저지른 죄의 값을 자손이 책임져야 하는 영적 환경에 눈을 떠야 한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또한 성경 속에서조차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어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이스라엘의 속담이 발견됩니다. 부모가 먹은 것인데 자녀가 이가 시다는 것은 부모의 행동이 그 후대에 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31:29-30에서 하나님은 다시 새언약을 세우시면서 ”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새롭게 제시되는 하나님의 “사람보기”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한 영혼을 “혈족”을 배경으로 보시는 것이 아니라, “독대”를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저는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시편 37편이 말하는 의인의 자손과 악인의 자손을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나는 젊어서나 늙어서나, 의인이 버림받는 것과 그의 자손이 구걸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시편 37:25)

“내가 착하게 살면 내 자식이라도 상을 받겠지”라는 관점에서 의인의 자손이 축복받는다기보다, “의인(義人)” 자체가 자식에게 “의(義)”를 심겨준다는 것입니다. 즉, 자식과 상관없이 나의 의로 자식이 상(償)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의인은 자손에게 “의(義)”를 경험하고, 알게 하고, 품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의(義)”는 출생에 따른 피의 유전이 아니라, 한 인격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됩니다. 하나님이 의인의 자손에게 약속하시는 축복은 “의인됨”의 축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자식이 복을 누릴까?”라는 문제에서 “우리는 의인인가?”라는 문제로 시선을 옮겨야 합니다. 시편 37의 시인은 의인을 내 자신이 악해지지 않기 위해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오히려 여호와 앞에서 “잠잠함” “인내” “기다림”의 세월을 선택하는 사람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악인의 풍성함보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더 견고하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얼마나 가지는가?”에서 “누가 가지는가?”의 문제로 재물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시인은 “의인”이 많이 가지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만이 바르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르게 소유하지 못한 악인의 풍성함이란 액수에 있어서는 의인의 적은 소유보다 월등할 수 있지만, 결국 “의”를 생산해 내지 못하는 광활한 불모지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자식의 미래를 위해 가장 크게 공드려야 할 노력은 “부모인 내가 의인되기”입니다. 악을 선으로 대처하며, 바르게 소유하기 위해 선택하고 노력하는 부모의 슬하에 있는 그 자식은 베풀며 살 것이다라는 시인의 축복이 우리 교민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글 : 골드코스트 비전장로교회
담임목사 윤명훈, 0423 932 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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