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어느 날 한 청년이 앵무새 한 마리를 사 왔습니다. 그런데 이 새가 어디서 배웠는지 그를 향해 온갖 욕설과 조롱,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전 주인한테 못된 것만 배웠군.” 하고, 몇 번 타일러도 보았고 심하면 꾸짖기도 했지만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졌습니다. 결국 그는 화가 나 더는 참을 수 없었고, 교훈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새를 집 안 냉동실에 던져 넣어 버렸습니다. 새는 “어? 뭐 하시는 거예요? 이건 아닌데? 근데 너무 추워요. 제발 꺼내 주세요.” 하며 한참 퍼덕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더니, 어느 순간 갑자기 조용해졌습니다. 그는 이제 됐다 싶어 냉동실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새가 힘없이 걸어 나오더니,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저의 무례한 언행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래, 용서하지. 나도 알고 보면 좋은 사람이야.” 그러자 이 새가 조심스럽게 덧붙였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 가지 여쭈어도 될까요?” “뭔데?” “제가 보니, 냉동실 안에 닭 한 마리가 털이 다 뽑혀 누워 있던데,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 지경이 되었나요?”

누구든 자신 있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에이, 나도 그런 앵무새 정도면 용서할 수 있지…” 그러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결혼하지 않은 두 자매가 같이 신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둘은 기숙사 한방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살다 보면 흔히 그렇듯, 이 두 자매도 자주 다투게 되었습니다. 스티븐슨은 그 다툼이 다른 게 아니고 “신학적 관점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싸움은 너무 심해서, 두 자매는 서로 전혀 말을 섞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화가 나도 말조차 서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오직 침묵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따로 살지는 않았습니다. 방세를 따로 낼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같은 방에 머물렀지만 바닥에 분필로 선을 그었습니다. 한 자매는 한쪽에, 다른 자매는 다른 쪽에 머물렀습니다. 각자 자기 쪽에서만 음식을 만들었고, 상대편 쪽은 넘지 않은 채 방을 드나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살았습니다. 밤이 되면, 서로 미워하는 그 자매의 숨소리를 들으며 잠자리에 들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며 신학을 공부하고, 그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괴롭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 자매들이 매주 교회에 가서 예배를 시작할 때 사도신경을 읽고, 끝나면서 주기도문을 외우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집에 와서는 여전히 방바닥과 문과 벽난로, 마음의 벽까지 분필로 선을 긋고, 밤마다 씩씩거리며 수년 동안을 고통받아야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진심으로 주기도문을 외우고 실천했다면, 여전히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을 품고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하는 기도는 그들이 서로를 용서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이끌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용서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11:4)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니, 우리의 죄도 용서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기도문의 헬라어 원어에는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가 먼저 나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한 우리의 죄를 “먼저” 용서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앵무새는 용서하지만,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들은 먼저 용서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울 때마다 우리에게 죄지은 자들의 용서를 구하는 것보다 먼저 이렇게 기도하면 어떨까요? “주님, 제가 저에게 죄지은 제 남편을, 아내를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저에게 죄 지은 이웃을, 직장 상사를, 직장 동료들을, 후배들을, 저에게 잘못을 저질은 부모님을, 자녀들을, 형제, 자매들을, 친구들을, 친척들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요.”

글 : 골드코스트 선교교회
담임목사 박갈렙 0431 232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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