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떠나고 싶은 중세의 유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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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일여행은 2주 동안 계속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를 떠나서 수천 년 역사의 증인으로 남아 있는 만하임의 고성과 하이델베르크를 향해서 차는 달렸다. 독일 남서부 라인강과 네카어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한 만하임(Mannheim)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상징은 만하임 궁전(Mannheimer Schloss)으로서 유럽 최대 규모의 바로크형식의 궁전이며, 웅장한 외관과 넓은 광장은 만하임이 지녔던 정치적 위상을 오늘날에도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대학의 건물로 사용되며, 과거 중세 제후의 권위와 현세대의 젊음이 한 공간 안에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만하임은 산업과 발명의 도시이며, 자전거와 자동차 역사에서도 중요한 자취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 독일의 낭만적인 다른 성곽 도시들과는 달리 좀 더 현실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듯했다. 만하임에서 점심을 먹은 뒤, 남쪽으로 약 30분 정도 달리니 대학의 낭만과 문학, “황태자의 첫사랑”이 전설처럼 살아 숨 쉬는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했다. 그때 나의 가슴은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너무 흥분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막연한 설렘과 환상을 심어주었던 도시, 하이델베르크. 그 이름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학창 시절에 보았던 영화 〈황태자의 첫사랑〉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 유학 온 황태자의 자유로운 청춘, 선술집에서 싹텄던 풋풋한 첫사랑, 식탁 위에서 커다란 맥주잔을 흔들며 “드링크, 드링크”를 외치던 젊음의 노래.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깊이 마음 안에 새겨져 있던 추억의 영상은 계속 내 안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지금의 난, 영화 속에서만 존재했던 그 시대의 올드타운에 실제로 왔으며, 그때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다. 학문과 철학, 젊음의 열기와 고요한사색이 겹겹이 쌓였을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한때의 환상이 현실 속으로 스며드는 그 순간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나는 캠퍼스 한 귀퉁이의 바닥에 주저앉아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다. 시공을 초월한 여행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면서.

하이델베르크를 걷다 보면 오래된 대학 도시 특유의 자유롭고 유쾌한 공기가 느껴진다. 그 분위기를 가장 흥미롭게 보여 주는 장소 한 곳이 바로 학생 감옥(Studentenkarzer)이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내에 있는 이 작은 감옥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데, 오늘날의 감옥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공간으로 보였다. 18세기 후반부터 1914년까지, 대학 규율을 어긴 학생들을 잠시 가두던 징계 장소로서 무단 외출, 소란, 술자리 난동, 결투, 공공질서 위반 같은 일을 저지른 말썽꾼들을 잠시 가두는 장소라고 했다. 당시의 대학은 도시 안에서 상당한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학생이 가벼운 문제를 일으키면 일반 경찰 대신에 대학이 직접 처벌했었다. 그 결과 생겨난 곳이 바로 학생 감옥이었다. 기간은 대개 며칠에서 몇 주 정도였고, 수업은 계속 들을 수 있도록 허용되기도 했다니 엄격한 형벌이라기보다 체면을 세우는 징계에 가까웠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볼 수밖에. 흥미로웠던 점은 학생들이 이 공간을 오히려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여겼다는 사실이며 감옥에 들어간 학생들은 벽과 천장에 이름, 날짜, 시, 그림, 장난스러운 낙서를 잔뜩 남겨 놓았다. 실내는 조금 어두운 편이었지만 벽과 천장에 새겨진 어지러운 낙서를 볼 수 있었다. 지금도 내부에 남아 있는 빼곡한 낙서들은 젊음의 허세와 유머, 반항심을 관광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청춘의 기록 보관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의 어두웠던 지난 정치 시절과 비교되기도 했다. 벽마다 남겨진 낙서들을 보니, 수백 년 전의 학생들도 오늘날의 젊은이들처럼 규칙을 넘나들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내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면 네카강 위로 칼 테오토르 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여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였던 철학자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이 다리를 지나며 산책을 했는데, 지나가는 시간이 항상 일정해서 마을 사람들이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사유하며 고뇌하는 칸트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나는 궁금증과 호기심이 뒤섞인 채 철학자 칸트를 회상하며 긴 다리를 천천히 걸어보았다.

네카강 건너편 산에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하이델베르크 성의 웅장한 모습이 버티고 서있었다. 13세기에 세워진 이 성은 르네상스 양식이며, 왕의 거처였고,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알려져 있다. 삼십 년 전쟁과 벼락을 맞아 곳곳이 훼손되었음에도, 그 잔해마저 역사가 되어 오늘날까지 위엄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서 있었다. 하지만 중세기의 시민들을 생각해보면 군주를 위해서 그들이 바친 희생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던져주는 의미도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하이델베르크 성의 지하실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높이 약 7m, 22만 리터를 담을 수 있는 와인 통이 있는데 한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거대한 크기의 포도주 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저장 용기의 개념을 넘어서 한 시대의 풍요와 권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당시 팔츠 지역에서는 세금 일부를 와인으로 거두었고, 영주는 그 포도주를 이 거대한 통에 모아 자신의 부를 드러냈다고 한다. 이 거대한 포도주 통은 실용성보다 상징성이 더 컸던 셈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관광객들의 표정에 연민과 호기심의 표정이 드리우고 있었다.

높은 성벽에 올라 바라보는 강 건너의 마을은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가는 석양 아래에서, 신이 만든 세상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그 풍경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웠다. 나는 그토록 매혹적인 하이델베르크에 아쉬움을 잔뜩 남기고, 뮌헨으로 방향을 돌렸다. 해 질 무렵, 붉게 변해가던 하늘 아래에서, 하이델베르크 대학 캠퍼스를 누비고 다녔던 나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찌릿찌릿 해오는 감동으로 전해온다.

뮌헨에서 열리는 독일의 전통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에 참석하기 위해서 서둘러 다시 남쪽으로 내려갔다. 젊음의 활기 그리고 음악, 맥주 향으로 가득한 축제의 장,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바이에른 왕가의 결혼식을 기념하며 시작된 전통 축제로, 매년 9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약 2주간 열리는 세계 최대의 민속 축제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 축제로 명성을 얻었으며, 전통 음악과 춤, 화려한 퍼레이드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최고의 축제 장소가 되었다. 하이델베르크에서 뮌헨까지 차로 약 4시간 정도 걸렸다. 그리고, 브리즈번에서 미리 온라인으로 전통 민속 의상을 주문해 가져간 덕분에, 나는 관람객이 아닌 옥토버페스트의 한 참여자로서 그 축제를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독일 청년들이 전통 복장을 하고 즐기는 모습 속에 나도 자연스레 섞여들어서 함께 ‘K 하트’를 만들며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었다. 멋지게 차려 입은 독일 축제 꾼들이 나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청해왔을 때는 정말 신이 났었다.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맥주잔이 부딪히는 요란한 소리가 어우러진 광장은, 일상의 모든 걱정을 잊게 만드는 진정한 축제의 공간이 되었다. 그날 나는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축제의 한가운데서 많은 참가자와 함께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 것 같다.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이 민속 파티에서 느낀 기쁨과 자유는 독일여행의 마지막을 아주 특별하게 장식해 주었다.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그 시간 속에 잠시 머물게 해주었던 독일 바이에른주의 성 투어는 그 순간과 공간들을 오래도록 마음 깊이 간직하게 한다.

츄스(Tschuss: 안녕, 잘 있어), 아름다운 독일이여!

난, 어느새 그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가는 여행을 조용히 꿈꾸고 있다.

글 : 황현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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